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어 한글 표기 논쟁 (문단 편집) === 신해혁명 기점 반대 측 === ----인명의 경우에는 출생일을 기준으로 신해혁명을 나누기가 용이하나----인명의 경우 출생일이 아닌 활동시기로 기준을 잡는 것이 국립국어원 표준으로, 활동시기라는 기준 자체가 주관적 기준이며, 신해혁명이라는 연대적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리훙장]](이홍장, 1823-1901)처럼 신해혁명 전에 죽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한자음에 맞게 표기되지 않는 등 [* 두음법칙이 1933년에 명시화 된 만큼 리홍장이 오랜기간 맞는 표기였으며 따라서 관용적 표현상 예외로 인정되는 케이스다.], 그 기준과 다른 경우가 많다. 또, 신해혁명 이후에도 쓰인 것과 쓰이지 않는 것이 공존할 수 있어서 같은 시대를 다루는데 현대 중국 한자음과 한국 한자음이 뒤섞이게 되는 불합리함이 있다. 신해혁명으로 전통 중국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부에서 중국 전토에 통용될 '[[표준어]]'를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해혁명 시기에 신정부에서 일단 정부에서 표준화해서 반포한 [[노국음]](老國音)은 당시의 정치, 사회적 혼란 때문에 제대로 전국에 전파되지 않았고, 여러 방언 가운데 절충하여 취합한 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방언과도 완전히 똑같지 않은 일종의 '인조 언어'로서 누구도 이 음에 따라서 말하지 않았다. 아무튼 1932년에는 북경 방언에 가까운 신국음(新國音)이 반포되었지만, [[중일전쟁]]과 [[국공내전]] 때문에 이 역시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신해혁명으로 만들어진 중화민국은 진정한 의미에서 '표준어'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현재와 같은 표준어인 [[보통화]]가 완성된 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지 몇 년이 지난 1956년의 일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표준중국어는 신해혁명-중화민국 시기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은 규범이었다. 심지어 중화민국의 총통 [[장제스]]조차도 [[광동어]] 발음을 기준으로 한 Chiang Kai-shek로 알려졌다. 중화인민공화국 이전까지 이러한 여타 표준 발음은 보편성이 없고 표준 중국어로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고 인정받지 못했다고 봐야 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보통화 발음'으로 전환하는 '기준점'을 신해혁명까지 소급하는 것은 타당성이 낮다. 보통화 전환의 기준점을 잡는다면 신해혁명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기점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으로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만들어진 보통화가 '표준중국어'의 지위를 차지하고 보급되어서 자리잡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기준이 신해혁명이 된 것은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한중 수교(1992년) 이전인 1986년에 제정됐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중국의 정통성이 중화민국(대만)에 있다고 보았고(그리고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일개 정당이 점거 중인 것으로 보았고), 중화민국의 건국은 신해혁명 때 공식적으로 선포됐기 때문에 신해혁명이 기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대개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기점으로 잡는다.) 한편 [[https://www.korean.go.kr/nkview/nklife/2008_4/2008_0402.pdf#page=10|엄익상 한양대 중문과 교수]]처럼 신해혁명 이전의 인명·지명도 중국어 원음에 따라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주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